저 곳이 남산공원 남문밖(성벽아래)의 취로 사업공사장인데 그 노가대 씹장님이 상희아버지였지. 원래 명서는 서문밖사람이라 자격미달인데..아버지빽을 상희아버지가 인정해준거지. 그당시 친구들 용돈버느라 고생하는데 명규는 일 안했지만 같이 먹고 노는 베짱이였지. ㅋㅋㅋ
우리 친구들 물질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시절이라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지. 연탄배달, 포장마차, 튀김과 떡볶기집 등 낮엔 힘들고 밤이면 행복했었지.
이택구
그래도 막걸리는 꿋세게 먹었지!!!
2/13 18:05
강한태
2011-02-14 19:32
얼마나 용돈이 궁했으면 부자집 자제들이 영세민 취로사업장에까지 등장햇당가 오로지 이 밤을즐겁게 하기위함.. 노세노세 젊어서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
이택구
그때는 어릴때도 없었지만 다 컸다고 용돈이라는것은 꿈도 못꾸었지!!! 성인이라는 강박속에 용돈나올때는 없고 놀구는 싶고....
2/14 21:16
박세흥
지금은 성습이가 젤 부자지만 그당시엔 젤 힘들었어. 얼굴봐 볼따귀는 쏙들어 갔고 고무신 신고..완죤 북한 사람이지. ㅋㅋ
2/15 23:43
강한태
세흥이는 동네 알부자 성습이와 명서는 전직 읍장 면장 의 자제님들인데 원 체신머리가 있어야지 내 원참....
2/17 20:17
박세흥
예나 지금이나 농민은 일부자여. 그리고 읍장 면장도 한태가 생각하는 만큼 대단하지 않아. 순분이가 동장인 모양인데 뒷조사해봐. 소박하게 먹고 살만큼만 가지고 있을거야.
2/17 23:53
이택구
ㅎㅎㅎ 그때는 알바도 별로 없던 시절이야! 어떻게 해서든지 용돈을 벌려고 저렇게 안간힘을 썼지!요즈음은 알바 종류도 많고 하기로 맘먹으면 얼마든지 있잖아....세흥친구 말마따나 저것도 일이라고 빽이 있어야 타 동네 사람도 참여할수 있었으니 참....난 그때 알바 해본것이라곤 인구주택조사 알바를 했는데 한 일주일 했을거야. 우리 동창하고 같이했던걸로 기억되는데 누군지는 생각이 안나네!! 돈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써보지도 못하고 군 입대했어!!! 그래도 우리 친구들은 생활력이 강해서 빈둥거리지 않고 저렇게 진짜 게딱지 만한 용돈을 벌려고 애썼지.아~~옛날이여~!